[이종문의 한시 산책] 이곳이 바로 바로 우리집이오

작성자: 관리님    작성일시: 작성일2017-12-07 11:44:58    조회: 163회    댓글: 0

매일신문 2017-11-25

 

이곳이 바로 바로 우리 집이오      장혼  

하얀 초가지붕 여남은 채 집         白茅十餘屋(백모십여옥)

그 위로 푸른 산 빛 빙 둘러 있소   上帶靑山色(상대청산색)

이 마을의 남으로 슬며시 오면      稍轉衖南頭(초전항남두)

문 안에 푸른 살구 두 그루 섰소    門內雙杏碧(문내쌍행벽)

울타리 가 아내는 조를 찧고요      籬角妻舂粟(이각처용속)

나무 아래 아이는 책을 읽지요      樹根兒讀書(수근아독서)

내 사는 곳 못 찾을까 걱정은 마오 不愁迷處所(불수미처소)

이곳이 바로 바로 우리 집이오      卽此是吾廬(즉차시오려)

  원제: 答賓(답빈)

 

그만하면 알 만한 사람인데도 아는 이가 별로 없는 사람이 있다. 이 시를 지은 조선 후기의 시인 장혼(張混`1759~1828)이 바로 그런 경우다. 장혼은 당시의 문학사와 서적 출판사, 학술사와 교육사 등 다방면에 걸쳐 눈에 확 띄는 큰 족적을 남긴 인물이었다. 그것도 그를 둘러싼 온갖 악조건들을 힘겹게 극복하고 이루어낸 결과였다. 악조건이라니, 무슨 악조건? 우선 그는 중인(中人)의 아들로 태어났기 때문에 사회적 진출에 숙명적인 한계가 있었다. 게다가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아 일생을 절뚝거리며 살았다. 어디 그뿐이랴, 그는 앞앞이 한숨이고 구석구석 눈물인 지독한 가난을 대를 이어 물려받았는데, 이 점은 다음 고백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나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가난한 집에서 자랐으며, 가난 때문에 벼슬을 했으나 봉급이 너무 작아 입에 풀칠조차도 할 수가 없었다. 항상 마음속에 고통을 숨기고 살았으며, 그 가난 앞에서 통곡이라도 하고 싶었으나 감히 통곡도 못한 지가 이미 오래다.”

이토록 가난했던 장혼이 인왕산 아래 옥류동에 있는 허름한 집 한 채를 10여 년 동안이나 마음에 두고 있었다. 기울어져 가는 보잘것없는 집이었지만, 산수가 빼어난 옥류동 가운데서도 가장 경치가 좋은 집이었다. 그 집을 사서 몇 칸짜리 집을 새로 짓고, 거기에다 자신만의 우주를 세우고 싶었다. 좋아하는 나무와 꽃들을 심어놓고, 책을 읽고 거문고를 타다가 그 우주 사이를 소요하고 싶었다. 벗을 맞이하여 술을 마시며, 시를 읊거나 휘파람을 불며 살고 싶었다. ‘~일 뿐’이라는 결핍의 의미와, ‘그만하면 됐다’는 자족(自足)의 의미를 동시에 담은 이이엄(而已广, ‘广’은 집)이라는 집 이름도 이미 지어두었다. 자신의 우주를 세우는 데 비용이 많이 드는 것도 결코 아니었다. 하지만, 막상 그 돈도 없어서 그는 그 꿈을 기약 없이 연기할 수밖에 없었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했던가. 훗날 장혼은 결국 그 오랜 꿈을 이루었다. 위의 시에 등장하는 집이 바로 장혼이 살았던 옥류동의 집인데, 그의 집을 찾아가다가 길을 잃을 염려는 없을 것 같다. 푸른 산에 빙 둘러싸인 올망졸망한 초가집들 가운데, 살구나무 두 그루가 서 있는 집, 울타리 가에서는 아내가 조를 찧고, 나무 밑에서는 아이가 책을 읽는 집, 안분지족(安分知足)의 시원적인 평화가 넘쳐흐르는, 바로 거기가 장혼이 사는 집이니까.

 

 
이종문 시인`계명대 한문교육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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